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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브욘 블롬달, 50세 생일 맞아
© 박우진
2008년 월드 팀챔피언쉽에서 경기중인 블롬달 선수
현 세계랭킹 1위이자 이미 전설의 당구선수가 된 토브욘 블롬달(스웨덴) 선수가 오늘로 5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수원 월드컵 우승과 4년만의 세계랭킹 1위 복귀를 자축하며 토브욘 블롬달 선수는 팀 동료들과 지인들을 27일 토요일 자신의 집(바크낭, 독일)에 초대해 파티를 열 계획이다.
블롬달 선수는 코줌의 전문 기자 프리츠 배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당구 인생과 열정에 대해 언급했다.
블롬달 : "다른 운동 종목과 달리 이렇게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큰 행운이다"
당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레이몽드 클르망 선수를 지목하는데 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클르망 시대 이후로,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클르망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선수로 토브욘 블롬달 선수를 꼽는데 이 또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블롬달 선수는 지금까지 (월드컵 우승이 아닌) 월드컵 챔피언을 무려 10번이나 했다. 수많은 젊은 선수들이 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블롬달 선수를 능가할 만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롬달 선수의 화려한 수상 경력은 굵직한 것들만 몇개 나열해도 어마어마하다. 당구 선수들이 평생 한번도 하기 힘든 월드컵 우승을 무려 40번이나 했고,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꼽히는 월드챔피언쉽에서 4번이나 우승을 했다. (클르망 선수와 함께 3번 이상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간 유일한 선수이다) 스웨덴팀을 대표하여 팀챔피언쉽에서 9번을 우승했고, 10번의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과 8번의 유럽피안 챔피언 타이틀, 그리고 9번의 유럽피안 클럽팀 챔피언 타이틀 또한 보유하고 있다.
스웨덴 국적으로 독일인과 결혼하여 독일 BW주의 바크낭(슈투트가르트의 북쪽 지역)에 살고 있는 블롬달 선수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공은 내 일생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공을 던져주셨다. 처음에는 축구를 했지만, 내 재능이 부족한걸 곧 느꼈다. 9살이었던 1971년에 처음으로 당구 클럽에 갔다. 괴테보리에 있는 당구 클럽이었는데 탁구대도 있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당구를 접했고, 나는 당구에 바로 빠져들었다."
10살때 블롬달 선수는 헤링보리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블롬달의 아버지는 다른 가족과 함께 클럽을 오픈했는데, 추후에 BK Borgen팀이 되었다.
"그곳에서 게임을 했는데 그때는 나의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 18살때쯤 아버지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 전에도 여러번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만 그때는 조금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당시 레이몽드 클르망 선수가 전세계 당구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난 꿈에서 종종 그와 경기를 하여 이기곤 했는데, 1985년 Amersfoort에서 열린 유럽피안 챔피언쉽에서 처음으로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준결승전에서 클르망 선수와 만났는데, 내가 이겼고 난 결승에서 Rini van Bracht 선수마져 이기고 우승을 했다."
1994년은 그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해였는데, 바로 현재 부인인 베아테와 결혼하여 독일 바크낭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우린 1988년 바크낭의 독일 오픈 토너먼트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결승전에서 클르망 선수를 이기고 우승을 했는데, 당시 베아테는 관중으로 와서 클르망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블롬달은 두명의 아들이 있는데, 1996년에 얀닉을 2001년에 헨릭을 낳았다.
프리츠는 블롬달에게 15가지 질문을 하였고, 그것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프리츠 :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보자. 축구와 탁구를 즐겨했지만 결국 당구를 선택했다. 축구와 탁구가 훨씬 더 인기가 많았을텐데, 당구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아버지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
블롬달 : 의심할 여지없이 당구의 아름다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종종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핀-볼 당구 종목에서 여러번 스웨덴 챔피언을 하셨고, 3쿠션에도 열정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 가족이 헤링보리로 이사하여 아버지가 클럽을 오픈하신 이후로 좀 더 자주 3쿠션을 연습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나의 코치이자 나의 상대선수였다. 우리는 주로 서로 다른 테이블에서 각자 연습을 했는데, 아버지의 당구 스타일이 나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레이몽드 버그만 선수처럼 얕은 스트록을 주로 사용하는 아버지는 주로 디펜스에 집중했다. 반면 나는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했다.
프리츠 : 본인 스스로나 주변에서 당구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빨리 알아차렸나?
블롬달 : 아버지와 나 둘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당구를 배운 첫 일년동안 생각보다 실력이 더디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첫 일년동안 에버리지가 0.350에서 0.490으로 올랐고 그 다음해에는 0.500에 그쳤다. 그 후 0.650으로 올랐을때 나는 고무되기 시작했고, 그후 몇년 후에 1점대의 에버리지를 스웨덴 챔피언쉽에서 쳤다. 난 한번도 누구에게 당구를 배운적이 없다. 가끔 René Vingerhoedt 선수가 클럽에와서 어린 스웨덴 선수들을 가르치긴 했지만 난 그때 주로 학교에 있었다. 내가 유럽피안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할때까지 아버지는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프리츠 : 레이몽드 클르망 선수는 3쿠션 뿐만 아니라 모든 당구 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당신의 경우에는 언제부터 3쿠션에 집중하기 시작했는가?
블롬달 : 처음 일년정도 핀-볼 당구를 치다가 3쿠션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3쿠션만 경기를 했던건 아니다. 항상 포켓볼과 핀볼, 3쿠션을 같이 플레이했고, 스누커도 플레이했다. 각각의 종목들이 나에게는 모두 매력이 있었고, 이는 원쿠션과 보크라인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보크라인 실력을 더 쌓기위해 에디 레펜스 선수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보크라인 200점을 한 이닝에 끝낼 수 있다. 그 어떤 종목도 버리지 않았다. 큐로 하는 모든 종목이 나이게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프리츠 : 지금까지의 경력을 몇단계로 나눌 수 있겠는가? 침체기도 있었는데, 그 어떤 점이 다시 정상의 자리로 오게 만들었는가? 당구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블롬달 : 몇몇 화려했던 년도들이 있다. 처음으로 클르망 선수를 이기고, 그 다음으로 월드컵에서 여러번 우승을 했는데, 그게 1995년 쯤이다. 2007년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해였고, 그 후 약간의 침체기를 거쳐 지금은 다시 화려했던 자리로 돌아왔다. 난 항상 야망과 포부가 있는데, 당구를 사랑하고 또 실력을 더 향상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3쿠션은 그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에 언제나 기술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 나의 침체기때는 항상 다른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는데, 딕 야스퍼스, 세미 세이기너, 이상천, 다니엘 산체스, 프레드릭 코드롱 등 많은 강한 선수들이었고, 그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대회는 점점 힘들어지고, 압박과 긴장은 더해진다. 경기중에 긴장을 많이 하는데, 박빙의 승부일 경우에 상대 선수보다 내가 더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때가 많다. 난 야스퍼스 선수처럼 늘 냉정을 유지하지 못한다. 정상의 자리에 있을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긴장감을 멋진 플레이로 포장했을 뿐이다. 이런 점은 아마도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코줌으로 관전하지도 못하신다. 어머니께 경기 결과를 물어보신 후에야 다시보기로 경기를 보신다.
프리츠 : 당구의 많은 종목들을 플레이했는데, 그중에서 3쿠션이 가장 맘에 들었는가?
블롬달 : 3쿠션을 직업으로 삼았고, 난 3쿠션을 사랑한다. 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종목이다. 하지만 늘 더 배울 것이 있다. 다른 모든 종목들을 사랑하지만 그중에서 3쿠션은 언제나 으뜸이다.
프리츠 : 당신의 경기 스타일이나, 삶의 스타일, 그리고 개인적인 면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아래의 몇가지 측면에서 본인을 설명해주겠는가?
(a) 테크닉, (b) 전술/경기 운영, (c) 포부, (d) 스피드, (e) 집중력, (f) 스포츠맨쉽, (g) 라이프 스타일, (h) 정신력
블롬달 : (a) 테크닉 - 실수를 줄이기 위해 항상 단순하게 만드려고 노력한다. 사실 나는 한가지 테크닉 밖에 없다. 큐를 뒤로 뺐다가 앞으로 미는 것. 마르코 자네티 선수는 아마 20가지 이상의 스트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속, 감속, 긴스트록, 짧은 스트록, 오른쪽, 왼쪽 등등.. 그는 정말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니엘 산체스 선수나 프레드릭 코드롱 선수 처럼 딱 하나의 스트록만 가지고 있다. 큐를 뒤로 빼서 잠시 멈춘 후 다시 앞으로 똑바로 미는 스트록. 코드롱 선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볼은 기억력이 없다. 당신이 어떤 큐로 공을 때리기 전에 어떤 스트록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b) 경기 운영 -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경기 운영은 디펜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타를 이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포지션이 쉽도록 볼을 배치시키는 것 말이다. 종종 볼을 특정한 구역으로 보내기 위해 더 세게 치기도 한다. 이런건 오랜 기간의 연습과 관전, 그리고 실험에 의한 느낌에서 온다. 특정 포지션에서 강하게 쳐야 더욱 득점이 쉽다는 것을 느낌으로 안다. 종종 운이 좋아 그런식으로 득점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운이 아니라 의도한 것이다.
(c) 포부/야망 - 어떤 경기든, 대회든 난 이기려고 노력한다. 그게 당구에 대한 사랑이고, 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 이기고자 하는게 상대 선수가 아니라 경기 자체일 경우도 있다. 어떤때는 마음대로 안되기도 한다. 이번 월드챔피언쉽 때 처럼 말이다.
(d) 스피드 - 난 빠른 스타일의 선수이다. 하지만 가끔 더 큰 하이런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경기 중간에 큰 변화가 필요하기도 하다. 40초 제한 경기에서는 이게 상당히 힘들기도 하다. 또 어떤때는 대회 내내 단 한번의 타임아웃도 쓰지 않을때가 있다.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 시간에 대한 압박은 이미 머리속에서 지워진 상태이다. 20cm를 더 가게 할까, 10cm를 덜 가게 할까로 고민하는 경우도 있고, 그 고민의 결과는 완벽한 포지션과 절대 풀 수 없는 난구의 차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e) 집중력 - 경기가 잘 풀리면 자연스럽게 집중이 잘된다. 경기가 잘 안풀리때는, 집중력 따위는 창문밖으로 던져버렸나 싶을때도 있다.
(f) 스포츠맨쉽 - 난 이걸 당구의 아름다움의 일면으로 보았다. 축구에서는 손으로 득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구경기에서는, 잘못된 득점이 있다면, 선수는 자리로 돌아가며 심판에게 정정을 요구한다. 종종 자리에 앉아있는 상대 선수에게 움직임이나 동작 등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건(움직임)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일이다. 자세히 보면 당구 경기중에는 모든것이 움직인다. 그 누구도 미이라처럼 있을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다니엘 산체스 선수는 자리에 앉아 있을때 정말 천사같다.
(g) 라이프 스타일 - 난 여행을 좋아한다. 음악 감상, 영화 감상, 독서 또한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집에 있을 때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마당에서 바베큐를 하기도 한다. 자전거도 타고 가끔은 그냥 앉아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조깅이나 탁구 등의 다른 스포츠도 즐기고, 또 티비로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h) 정신력 -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고 싶다. 어떨때는 두려움에 빠져서 내가 쳐야 할 방식대로 플레이 못할 때도 있다. 대회의 결승전은 정말 힘들다. 강철 같은 멘탈을 가진 선수들이 정말 부럽다.
프리츠 : 몇몇 부분에서 최고 선수들을 꼽는다면?
1. 테크닉 - 딕 야스퍼스, 프레드릭 코드롱, 타이푼 타스데미르, 다니엘 산체스, 에디 멕스
2. 야망/포부/의욕 - 프레드릭 코드롱, 딕 야스퍼스, 제레미 뷰리
3. 집중력, 멘탈 - 최성원, 에디 멕스, 딕 야스퍼스, 마틴 혼
4. 스포츠맨쉽 - 김경률, 마틴 혼
5. 경기 운영 - 프레드릭 코드롱, 마르코 자네티, 마틴 혼
프리츠 : 당구 인생에거 가장 기억에 남는 5가지 순간을 꼽는다면?
1. 1981년 스칸디나비안 챔피언쉽 우승. 내 생애 첫 메이져 타이틀이다. 피터 토게센, 커트 토게센, 한스 라우센 같은 덴마크 선수들이 우리보다 강했다. 스웨덴 선수는 나와 아버지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우승했다.
2. 1985년 레이몽드 클르망 선수를 상대로 처음 이겼을 때.
3. 1985년 유럽피안 챔피언쉽 우승. 클르망을 이긴 바로 그 주말이었고, 결승전에서 리니 반 브락트를 이겼다.
4. 1988년 첫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
5. 10번째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올해.
프리츠 : 월드챔피언 타이틀과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 중 어떤 것이 더 의미있는가?
블롬달 : 월드컵 챔피언 타이틀
프리츠 : 지난 10년간 3쿠션은 어떻게 발전을 해 왔는가? 어떤 점이 당신을 놀랍게 하는가? 아직도 당구가 더 아름다워지고 좋아지고 있는가? 선수들의 에버리지는 더 높아질 것인가?
블롬달 : 경기가 점점 더 힘든 경쟁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에 에버리지가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 선수들의 수준이 모두 상향평준화 되었다. 경기 질적으로 향상되었고, 특히나 포지션 플레이가 많이 발달했다. 하이런도 점점 더 자주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놀랍지는 않다. 내가 바로 그 중심에 있고, 나도 그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프리츠 : 에디 멕스 선수의 6이닝 50점 경기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가? 많은 선수들이 오랫동안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기록이다.
블롬달 : 난 그 즉시 말했다. 이제 남은건 하이런 뿐이다. 5이닝 50점은 아마 내 인생에 나오기 힘들것이다. 에디 멕스가 그 기록을 세운것은 크게 놀랍지 않다. 그는 어떤 테이블에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높은 정확도로 플레이 할 수 있는 선수이다. 멕스는 아마 중대에서 에버리지 6점 이상을 기록할 것이다. 그정도로 포지션 플레이에 능하고, 또 쉬운 포지션에서의 실수가 없다.
프리츠 : 다시 전성기의 기량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기분은 어떠한가?
블롬달 : 아직도 반신반의한다. 이제 다시 랭킹 1위로 올라셨다. 다시 예전의 레벨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모리나리 큐가 내 경기 스타일과 너무나도 잘 맞는다.
프리츠 : 새로 바뀐 경기 룰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40점, 50점제, 세트 경기, 후구 시스템 등..
블롬달 : 어떤 것이 최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가지 확실히 안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건, 후구 없는 30점 또는 40점 경기의 팀전이다. 무승부가 없어지므로 5-3 등의 결과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이건 좋지 않다. 개인전에서는 후구 없는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계속 세트경기를 고수할 수 없다는건 잘 알고 있다. 대회 운영진 입장에서 경기 시간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가 3시간 반 경기를 할 때, 코드롱 선수는 45분만에 경기를 끝낸다.
프리츠 : 종종 당구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얘기들을 한다. 당신의 의견은?
블롬달 : 개인적으로는 낙관적이다. 당구는,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한 영원할 것이다. 한국, 베트남, 멕시코, 콜롬비아, 네덜란드, 벨기에, 터키에서는 이미 당구가 엄청난 인기 스포츠이다.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프리츠 : 마지막으로, 당구 선수로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꿔본 적이 있는가?
블롬달 : 난 너무나 멋진 직업을 가지고 있고, 내 삶을 가족들과 만족스럽게 즐기고 있으며, 난 아직도 프로 선수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없을 것이다.
아래는 블롬달 선수의 주요 경력이다.
월드챔피언 :
1987년: WK in Caïro
1988년: 1e BWA worldcup ranking
1991년: 1e BWA worldcup ranking
1997년: WK in Grubbenvorst
월드챔피언쉽 바이애슬론 :
1987년: Epinal
월드 팀챔피언쉽:
1987/1990년: Lennart Blomdahl(블롬달의 아버지) 선수와 함께 마드리드(스페인)와 피어슨(독일)에서
2000년/2001년/2005년/2006년/2007년/2008년/2009년 마이클 닐슨 선수와 함께 피어슨(독일)에서
월드컵 챔피언
1988년/1991년/1992년/1994년/1995년/1996년/1998년/2001년/2007년/2011년
올해의 선수
2001년/2007년
슈퍼컵
2002년/2003년
유럽피안 챔피언쉽
1985년: Amersfoort
1986년: Mondorf les Bains
1988년: Vejle
1990년: Norrköping
1991년: Dordrecht
1998년: Aubagne
2001년: Odense
2005년: Porto
유럽피안 팀 챔피언쉽
1985년/1991년 Lennart(아버지)와 함께
유럽피안 클럽팀 챔피언쉽
1984년, 1985년, 1989년, 1990년 : BK Borgen팀 소속
1998년, 1999년, 2000년 : Pelgrim Profs팀 소속
2002년 : Van Wanrooij팀 소속
40회 월드컵 우승
23회 스웨덴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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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1/1 - 등록일자 2012년 10월 27일 오전 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