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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재호 "아시아 선수권 3쿠션 우승, 배로 기쁘다" - 1
© 아시아 선수권대회 3쿠션 우승자 조재호
[엠스플뉴스]
지난 4월 8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막을 내린 아시아 선수권 3쿠션 대회에서 허정한을 꺾고 조재호가 우승을 차지했다. 조재호는 초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슈퍼맨이란 별명답게 후반 몰아치기로 단 10이닝만에 에버리지 4.0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다음날 서초동에 있는 훈련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아시아 챔피언이 된 소감은
A.2011년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최성원 선수에게 패하면서 4강에 한번 간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 8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8강 때부터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16강에서 동궁이 이기고 8강 상대로 마 민 캄 선수가 올라올 줄 알았는데 상대방이 대역전극을 펼치며 올라왔다. 그때부터 사실 우승 욕심이 많이 났었다. 마지막에 우승을 하고 나니까 살짝 복받쳐서 올라왔다. 후구였다면 눈물이 보였을 수도 있다. 월드컵 우승했을 때도 기뻤지만 이번이 더 기뻤던 거 같다. 왜냐하면 주위에서 ‘요즘 성적이 안 좋다’, ‘직책(선수위원회 위원장) 맡고 신경을 너무 못쓰는 거 아니냐’ 등등. 사실 욕심을 많이 냈던 건 그런 일을 하더라도 당구를 위해서 봉사하면서도 선수로써 당연히 지장을 안 받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을 하긴 했는데, 여파가 오긴 오더라. 그래서 그런지 우승을 하니까 배로 더 기뻤다.
Q. 이번 대회 우승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A. 이제 효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올해 1월부터 시작한 운동이다. 친구가 PT 헬스 트레이너인데 그 친구에게 부탁들 했다. 연말에 시합이 너무 많아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돼서 시합이 잘 안 되니 운동 좀 시켜달라고. 그렇다고 효과가 바로 나오는 건 아니었다. PT에 집중을 하다 보니 연습량이 부족했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은 저조했고, 그러면서도 욕심은 나니까 시합은 부담스러웠고, 또 선수위원회 위원장 맡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보니 성적이 좀 안 나왔다. 이제 상황 정리가 하나씩 정리가 되면서 연습에 좀 더 집중을 했더니 운 좋게 성적이 나온 거 같다.
Q. 이번 아시아 선수권대회 4강 최성원과의 경기에서 8이닝에 33대 16으로 앞서 있었는데, 나머지 7점을 치기까지 19이닝이 더 걸렸다. 갑자기 경기가 잘 안 풀렸던 이유는 무엇인가
A.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 이기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거 같다. 그러다 보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테이블 컨디션이 나하고 안 맞는 느낌이 들었고, 내가 생각한 곳까지 공을 보냈는데도 득점이 안됐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빨리 끝났어야 하는 게임인데 어떻게 이렇게 가지”라고 성원이 형한테 얘기했더니 “내가 수비 많이 했다” 그러더라. 성원이 형이 맘먹고 수비하고 승부사로 돌변해서 들어오면 사실 굉장히 불편하다. 스코어가 그렇게 차이가 나면서도 쉽게 끝날 거라 생각은 안 했는데 역시 압박이 들어오니까 쉽지 않았다. 그때 내가 같이 수비를 확실히 하든지 아니면 완벽한 공격을 했어야 되는데 약간 마음을 놓았던 게 그렇게 된 거 같다.
Q. 이번 대회에서 서현민, 강동궁, 최성원과의 경기에서 각각 7점, 16점, 11점을 치며 경기를 끝냈다. 조재호하면 몰아치기에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비결은 무엇인가
A. 몰아치기는 연습량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집중이 되는 순간이 오면 살짝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 공을 어떻게 쳐서 어떻게 세울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연습한 데로 가장 좋은 힘 조절, 당점, 두께를 찾아서 치면 공은 자연스럽게 좋게 선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연습하면서 알아왔기 때문에 몰아지기 상황에서는 인터벌이 짧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터벌이 길어지는 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세울까. 어떻게 맞출까, 회전을 어떻게 조절을 할까. 경기 초반에는 조절을 하면서 치다가 눈에 들어오면 변하는 것이다.
강동궁 선수와 경기 때도 공은 다 깔끔하게 진행이 되긴 했지만 원쿠션 넣어치기하나가 내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들어간 행운의 샷이 하나 있긴 했다. 그때 치면서 찬스가 왔을 때 이번에는 끝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16점을 치는 상황인지도 몰랐다. 10점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많이 쳤구나 생각했고, 나머지 3점 했을 때 무조건 끝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상황이 생겼던 것이고, 허정한 선수와의 결승전은 사실 거의 브레이크 타임까지는 이 게임 너무 어렵게 가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시합 전 임윤수 코치님이 “조재호답게 한번 쳐봐라. 이번에는 영 불안불안하네. 조재호답게 치는 거 한번 보고 싶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휴식 나갔다 들어와서 앉아 있는데 그 생각이 들었다. 후구도 아니고 초구이고 스코어는 이미 9점 차로 안 좋은 상황인데 그래 질 때 지더라도 멋있게 지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8점, 7점이 나왔다. 마지막 11점 칠 때도 굉장히 떨렸다. 만약에 한큐를 더 준다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고 최대 집중을 했다. 엄청 떨면서 쳤다.
Q. 당구는 언제부터 쳤나
A. 1994년 여름 방학 전이다. 그 당시는 코인 노래방이 유행을 할 때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자주 가던 때였는데 내가 가던 노래방이 당구장과 노래방을 한 층에서 같이 운영을 했다. 그때 노래방에 자리가 없다고 당구장에서 연습하면서 놀고 있으라는 거였다. 난 초등학교 때 아버지에게 자세를 잠깐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서 친구 2명에게 브릿지랑 자세를 알려주며 자리가 날 때까지 놀았다. 노래방에 자리가 나서 노래를 하고 있는데 자꾸 당구 생각이 났다. 그래서 친구들과 기본 30분 게임할 수 있는 돈을 모아서 당구를 더 치다 왔다. 그때부터 당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매일 가서 아저씨들한테 물어보면서 배웠다. 그렇게 여름방학 한 달동안 연습해서 200점이 됐다. 그랬더니 동내 아저씨들이 이뻐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쳤더니 중학교 3학년 때 300점이 됐다. 그러면서 당구장 가면 어른들이 이뻐해 주시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때 꼭 데려가고 편먹고 치는 게임이 있으면 날 편으로 데려가서 돈 걱정 없이 게임 치게 해주셨다. 사람이 살면서 제일 잘하는 게 뭐예요라고 했을 때 나는 특별하게 말할게 없었는데 당구를 치니 중3 때 전교에서 당구 왕이 됐다. 게다가 당구장만 가면 사람들이 잘해주니까 난 이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도 하고 태권도도 하고 있었지만 진로를 빨리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3 때 당구로 성공해야겠다고 진로를 정했다.
Q. 4구 300점 이상의 실력을 쌓으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했을 텐데 도와주신 분이 계신가
A. 고등학교 1학년 때 4구 500점 정도 쳤다. 내가 다니던 클럽을 김철민 선생님 처남 되시는 분이 인수를 하셨다. 김철민 선생님이 개업식 날 예술구 시범을 보이시러 클럽에 오셨는데 클럽 사장님이 나랑 선배 몇 명을 그분께 소개해주셔서 천호동에서 역삼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당구를 배우러 다녔었다. 당시에는 나보다 같이 배우러 다니던 형들이 더 잘 친다고 했었고, 나에게는 별 반응이 없으셨었다. 그러다가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계속 당구 치고 있으니까 클럽 사장님의 소개로 김철민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집 나와서 당구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약 7개월가량을 일하고 당구 배우면서 지냈다.
Q. 당구 선수를 하겠다고 학업도 포기했다. 그런 결정을 부모님이 쉽게 이해해 주시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A. 어마어마하게 반대하셨다. 사실 내가 당구를 친다고 했을 때 어머니를 비롯해서 일가친척들 모두 반대를 했었다. 그런데도 난 당구가 좋았다. 내가 나중에 당구장을 해서라도 먹고 살 자신이 있으니까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제가 왜 저러나, 정신 못 차렸네 이렇게 생각하셨다. 나이는 어렸지만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습을 했다. 잠은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자면서 약 3년 정도 연습을 하고 나니 성적이 나오고 시작했고 방송에 나오기 시작하니까 친척들이 “우리 조카야”로 바뀌더라. 그렇게 바뀌게 된 시점이 방송의 효과인 거 같다. 지금은 친척분들 모이면 이모들이 “우리들 중에 인터넷에 이름 치면 나오는 사람 누가 있어 재호 밖에 없잖아” 이러신다. 사실 참 힘들었었다. 돈벌이도 별로였었고, 돈 벌려면 내기 당구를 쳤어야만 했다.
Q. 내기 당구는 얼마나 쳤나
A. 한 1년 8개월 정도 쳤었던 거 같다. 남들보다는 굉장히 적은 시간을 치고 바로 선수로 들어왔다. 주변에서 좀 더 치지 왜 선수를 하냐라고 만류를 많이 했다. 사실 내기 당구로 돈벌이가 괜찮았었다. 하지만 난 선수로 성공하고 싶었지. 눈앞에 몇 푼이 욕심나지는 않았다.
Q. 당구는 멘탈 경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평소에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A. 많은 분들이 얘기하시는 게 당구는 멘탈이 강해야 한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제일 강해야 하는 건 선수들이다. 오히려 수준이 올라갈수록 유리 멘탈이 될 수도 있다. 완벽한 조건에서 집중을 하며 시합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동선이나 경기 외 다른 것들이 더 잘 보인다는 것이다. 근데 그게 또 연습량에서 나오는 거 같다. 연습이 잘 돼있어서 집중이 잘 될 때 시합을 하면 내 시야가 테이블로 집중이 되는데 연습량이 부족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넓어지면 집중력이 계속 떨어진다.
Q. 평소에 하루 연습량은 얼마나 되는가
A. 오전에 나오면은 2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운동 끝나고 식사한 뒤에 연습을 하는데 많이 하면 4시간가량 한다. 전에는 개인 연습을 6시간 정도 연습을 했는데 지금은 2시간 정도를 운동에 할애를 하고 있다.
Q. 연습은 어떻게 하나
A. 게임을 통한 연습보다는 대부분이 개인 훈련이다. 게임은 하루에 한게임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시합 나가기 전에 김형곤 선수와 만나서 2경기를 했는데 1승 1패를 했다. 김형곤 선수가 자기랑 연습해서 우승한 거라고 말해달라고 했다. 하하
Q. 딸이 있는 걸로 아는데 만약에 딸이 당구선수하겠다고 학교를 그만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A. 본인 의지가 중요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지 내가 원하는 걸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선수가 되겠다고 한다면 최고의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Q. 선수 등록은 언제 했는가
A. 1999년 12월 20살 때 서울연맹으로 등록했다.
Q. 별명이 슈퍼맨이다. 슈퍼맨이란 별명이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오늘도 이 옷(슈퍼맨 마크가 있는 재킷)을 입고 나왔는데 처제가 사준 옷이다. 2013년 이스탄불 월드컵 때 이 옷을 입고 다녔는데 32강전 야스퍼스와 시합을 16이닝만에 40대 39인가로 이기고 밖에 나왔더니 사람들이 나를 보고 “슈퍼맨 슈퍼맨” 그러는 거였다. 왜 그러지 하고 생각해보니 옷에 슈퍼맨 그림이 있어서 그랬고, 게임도 슈퍼맨처럼 멋있었다고 그러는 거였다. 그 당시 김용철 선배님이 모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계셨는데 옆에서 시합 끝날 때까지 지켜보시다가 내가 우승하고 우승 세레모니로 슈퍼맨 포즈 하고 그랬더니 “너 그거 좋다 내가 방송에서 더 많이 얘기해줄 테니 너 별명은 슈퍼맨으로 굳혀가자” 그랬다. 그래서 슈퍼맨이 된 거다. 시작은 처제가 사준 옷 덕분이다. 하하 이번 대회에도 이 옷을 입고 갔는데 그때의 기분을 살려보려고 일부러 입고 가기도 했다.
Q. 국제 경기 때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상대는 누구인가
A. 나보다 하위 랭킹에 선수가 가장 힘들다. 누구나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가 ‘대진운이 좋네’ ‘거저먹었네’ 이런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시합이 어려워진다. 지지 말아야 할 경기가 제일 어려운 경기인 거 같다. 국내 선수들 중 누구랑 치는 게 제일 어려우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린 선수다.
지난해 세계 선수권 대회때 조재호와 프레드릭 쿠드롱
Q. 조재호의 다른 별명 중 ‘리틀 쿠드롱’이란 별명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 별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알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A. 리틀 쿠드롱이라는 소리를 딱히 듣기 싫다고 한건 아니었는데. 이유가 하나 있다. 아지피 시합 때 4강전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리틀 쿠드롱 파이팅’ 하면서 문자가 왔다. 쿠드롱이랑 시합을 하려 하는데 리틀 쿠드롱 파이팅이라 하면 리틀 쿠드롱이 쿠드롱을 어떻게 이기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물론 경기도 망쳐버렸다. 나도 이제 탑 랭커에 들어갔고 어느 정도 실력을 내고 있는 선수인데 그런 사람에게 리틀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난 쿠드롱을 제일 좋아한다. 하하
Q. 이번 대회 우승으로 랭킹 포인트가 64점이 오르면서 세계 랭킹도 9위까지 오르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월드컵 시드도 받게 됐는데 올해 월드컵 우승 전망은 어떤가
A. 행직이가 두 번 연속 우승을 해서 부담을 갖지는 않는다. 게다가 대회 우승 한번 해봤으면 됐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랭킹에서 밀리고 나니까 우승이 더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올해가 됐으면 좋겠고, 현재 랭킹 포인트가 245점인데, 우승, 준우승, 4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경기를 하니까 경기가 더 잘 안되는 거 같다. 그래서 목표를 간단하게 숫자화 시켜서 랭킹 포인트를 300점을 넘겨 보자로 정했다.
Q. 월드컵도 우승해봤고, 아시아 선수권도 우승을 했다. 이젠 세계 선수권 우승만 남았는데
A. 세계 선수권은 8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난 성적은 단계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승한다면 당연히 좋긴 하겠지만 일단 세계 선수권 대회 목표는 4강이다. 최근에 서울연맹 월례대회에서 4강을 했었다. 하도 오랜만에 입상을 해서 그런지 4강 축하 문자를 받기도 했다. 입상을 하고 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아시아 선수권도 4강에 들어 시상대 위에 서는 게 목표였다. 월드컵도, 세계선수권도 시상대 위해 서려고 노력할 것이다.
Q. 가장 아쉬웠거나 기억에 남는 경기는
A. 허정한 선수가 말했듯이 나도 세계 팀 선수권대회 때 결승에서 졌던 게 가장 아쉽다. 4강에서 졌네, 결승에서 졌네, 월드컵을 어디서 졌네 등 수많은 시합을 많이 해봤지만 다 기억에만 조금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합은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시합을 우승한다고 해서 연금 포인트가 있고 없고 때문이 아니라 웬만한 큰 대회에서 우승은 거의 해봤는데 세계 선수권이라 그런지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지금 룰이었다면 우승하지 않았을까 생각은 든다. 결승전 까지는 참 잘 쳤었는데 결승전에서 큰 실수를 2번 한 게 너무 아쉬웠다. 지금은 절대 실수 안 할 거 같았는데 그때는 어렸었던 거 같다. 게다가 그때가 경률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우승 트로피를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하고 가서 이 악물고 쳤는데 결과는 은메달이어서 더욱 아쉬웠다.
-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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