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롬 빌리아드 - 3쿠션 - 세계 선수권 대회(월드 챔피언쉽) - Bordeaux (FRA)
[인터뷰] 신동, 천재를 넘어서다…김행직 "당구계 손흥민? 제가 영광이죠"
© 제69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생애 첫 16강 진출에 성공한 김행직
[보르도=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당구계 손흥민이라고요? 제가 영광이죠.”
‘예술당구’로 불리는 3쿠션 종목은 간간이 인생과 비유된다. 알다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구공 3개를 두고 내 공을 큐로 쳐서 나머지 두 공을 맞히기까지 세 번 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종목인 3쿠션은 가장자리(쿠션)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당구 고수여도 3쿠션만큼은 수만가지 생각과 경험을 통해 비로소 도를 깨우칠 수 있다. 당구인 사이에서 “3쿠션은 10대,20대 때 산전수전을 겪고난 뒤 30대 이후에 들어서야 전성기를 누릴 종목”으로 입을 모은다. 1992년생인 김행직(전남연맹·세계랭킹 18위)은 이같은 고정관념을 깬 한국 당구의 미래다. 고교 1학년 시절인 지난 2007년 스페인 세계주니어선수권 챔피언에 오른 그는 2010년 이후 3년 연속 이 대회 정상에 오르며 사상 최초로 4회 우승 대기록을 세웠다. 급기야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했고 역대 최연소 국내 랭킹 1위에 올랐다. 정상의 자리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말 LG유플러스와 3년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당구 선수가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건 사실상 처음이다. 국제적으로 잘 나가던 선배들도 당구용품 브랜드나 중소기업 후원을 받는 게 대다수였다. ‘바르고 곧게 살라는 의미’에서 부모가 지어준 이름 ‘행직’이 이름과 닮은 당구와 만나 큰 미래를 열고 있다.
김행직은 꿈에 그리던 세계선수권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8일(한국시간)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보르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9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조별리그 O조 최종전에서 프랑스의 마크 보잉네레스(605위)를 40-22(21이닝)로 이겼다. 전날 미국의 페드로 피에드라부에나(17위)를 40-16으로 완파한 그는 2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랐다. 김행직은 이번 대회 참가한 선수 중 가장 어리다. 1992년생에 불과하나,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천재성을 입증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는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매년 6차례 이상 열리는 월드컵에서 만나는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이지만 세계선수권이란 무게감이 확실히 다른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띠동갑 이상 차이가 나는 대표팀 선배 5명과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항상 선배들에게 배운다는 마음”이라고 강조한 그는 “20대 초반까지는 정말 패기로만 당구를 쳤는데 지금은 경험이 쌓이니까 오히려 실수에 대한 부담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 경기 영상을 꾸준히 찾아보며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예전과 달라진 건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운영 능력이다. 무조건 점수를 쌓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어려운 공도 주면서 템포를 조절하고 있다.”
김행직은 동갑내기인 축구스타 손흥민과 비슷한 행보로 ‘당구계 손흥민’으로도 불린다. 손흥민은 유년 시절 학원 축구가 아닌 아버지이자 전 국가대표인 손웅정씨에게 기술을 배웠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따르면서 기본기를 갖췄고 만 18세 독일 분데스리가로 넘어가 일찌감치 프로 세계를 경험했다. 김행직의 인생 궤적은 손흥민과 꽤 비슷하다. 당구장을 경영한 아버지 김연구씨의 영향으로 3세 때 처음 큐를 잡으며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가 6세가 됐을 때 아버지는 당구장 사업을 포기하고 고깃집을 냈다. 더는 당구와 인연이 없으리라고 봤다. 그러나 아들의 재능을 눈여겨 본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다시 당구장으로 데려갔다. 선수로 키워보고자 결심한 것이다. 당구를 대하는 자세부터 기술까지 세심하게 지도했다. “어렸을 때 습관이 참 무서운 것 같다. 거부감이 없었고 당구와 다시 가까이 하게 되더라.” 이듬해 성인 전국대회에 처음 나선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첫 우승을 차지했고 전국체전 학생부 정상까지 경험했다. 당구 신동으로 불릴 때다. 전북 익산에서 초중학교를 보낸 그는 수원 매탄고로 진학했다. 연고가 없었던 지역으로 넘어간 건 매탄고에 당구부가 창설됐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 대회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동생 김태관(21) 역시 매탄고 출신이다. 매탄고 진학 이후 주니어 무대를 평정한 그는 꿈꾸던 2011년 한국체대 입학을 포기,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 도전한다. 주니어선수권 때 알게 된 한 지인의 소개였다. 당시 분데스리가 1부리그 1위 팀인 호스터에크였다. 이 팀엔 현 세계랭킹 1위인 토브욘 브롬달(스웨덴)이 몸담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 출전은 경기마다 1명씩이었다. 입단 첫해 브롬달에게 밀려 경기 출전이 뜸했으나 9경기에서 8승(1패)을 기록했다. 이듬해 브롬달보다 더 많은 출전 횟수를 기록하면서 14승을 따냈다. “경기를 하든 안하든 종일 당구에만 몰입했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게 지금 나를 만든 소중한 자산이다.”
김행직의 롤모델은 ‘당구의 전설’로 불린 고 김경률이다. 한때 김경률에게 1년 6개월 정도 사사를 받아 실력이 크게 발전한 건 유명한 일화다. “당구를 잘 치는 선배이기 전에 마인드를 따라가고 싶다.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루,이틀정도만 안해도 내가 원하는 경기가 안되는 스타일이다. 경률이 형은 소문난 연습 벌레였다. 프로라는 소리를 듣고 선수라면 밥만 먹고 당구만 치는 게 맞다고 본다.” 평소 내성적인 성향의 김행직은 당구를 통해 여러 세계 대회에 나서고 외국 친구들과 만나면서 적극적인 면도 생겼다고 한다. 이젠 한국 당구가 제2 중흥기를 넘어 세계 속에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단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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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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